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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도 살아남는 일자리 요양보호사의 현실과 장점

by 알갱이자가치유 2026.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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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건반에서 주방의 식기세척기까지

나의 일생은 돌이켜보면 참으로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온 시간의 연속이었다.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는 피아노 강사로 활동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보람으로 살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세상은 변했고 피아노 학원의 풍경도 달라졌다.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들의 나이는 점점 젊어지는 반면 나의 나이는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이다. 원장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선생님을 부담스러워했고 나이가 많은 교사가 일할 수 있는 자리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학교마다 방과후 수업이 대폭 늘어나면서 동네 피아노 학원들이 예전만큼 활기를 띠지 못하게 된 것도 큰 이유였다. 내가 평생을 바쳐온 전문 분야에서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씁쓸했지만 나는 멈춰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생계를 위해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고 패스트푸드점이나 일반 매장의 주방 일을 시작하게 됐다.

식당 주방에서 일을 하려면 반드시 보건증이 있어야 했다. 보건증은 신청하면 발급까지 일주일 정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나는 언제 어디서든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항상 보건증을 미리 신청해 두는 습관이 생겼었다. 집에는 늘 유효한 보건증이 준비되어 있었고 그것은 곧 나의 치열한 삶의 증거이기도 했다. 햄버거나 피자를 만드는 주방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시간들이 그렇게 쌓여갔다.

 



 감각이 무뎌진 손가락과 고된 노동의 끝

 

가장 최근까지는 한 뷔페에서 식기세척 일을 했었다. 12년 전에도 같은 뷔페에서 하루 4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학원 강사를 할 때보다 오히려 급여가 많아서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의 좋은 기억을 가지고 다시 시작한 일이었고 집에서 버스로 10분 도보로 20분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하지만 다시 시작한 현장은 예전과 많이 달랐다.

하루 8시간 이상 고된 노동이 이어졌다. 점심때 출근하면 밤 10시가 되어서야 겨우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사장은 인건비를 줄이겠다며 인원을 감축했지만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은 배로 늘어나는 상황이 반복됐다. 함께 손을 맞춰야 할 서빙 직원들은 수시로 바뀌었고 매번 새로운 아이들에게 일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지치고 귀찮은 일이 되어갔다. 무엇보다 내 몸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방아쇠수지증후군이 찾아왔다. 증상은 갈수록 심해져 나중에는 손가락 끝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집이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이 정도 통증쯤은 견뎌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일을 계속했다. 그러다 보니 한쪽 손이 겨우 나을 만하면 다른 쪽 손이 똑같이 아파오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오른손잡이인 나에게 엄지손가락의 통증은 일상의 파괴였다. 캔 뚜껑을 따는 사소한 동작조차 할 수 없었고 젓가락질이나 글씨 쓰기 심지어 세수하는 일조차 고통스러운 숙제가 되었다. 수술을 권유받기도 했지만 수술비 걱정과 당장 일을 쉬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나는 다른 치료법을 선택하며 억지로 버텨나갔다. 1년을 채워 퇴직금을 받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지만 두 손을 모두 영영 쓰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앞섰다. 결국 나는 9개월 만에 그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간절함으로 극복한 요양보호사의 첫걸음

 

몸의 통증 외에 나를 힘들게 했던 또 다른 이유는 휴식의 부재였다. 면접 당시 일요일만큼은 쉬고 싶다고 간곡히 부탁했었다. 일요일이 매장에서 가장 바쁜 날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람을 더 채용해서라도 나를 배려해 주길 바랐다. 그러나 매장은 나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고 평일 휴무만으로는 누적된 피로를 풀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잠을 충분히 자야 컨디션을 회복하는 사람인데 극심한 피로 때문에 오히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많아졌다.

그렇게 고민 끝에 퇴사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던 중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접하게 됐다. 요양원 면접을 볼 때 관계자들은 어르신을 모시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봉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견디기 힘들다는 조언도 뒤따랐다. 하지만 나는 돌봄 노동이 처음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 신생아부터 어린아이들 그리고 학생들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돌봐온 경험이 있었기에 어르신을 케어하는 일이 막연하게 두렵지는 않았다.

실제로 요양원에서 일을 시작해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기저귀 케어를 견뎌낼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대소변을 처리하고 목욕을 돕고 식사 수발을 드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비위가 상하거나 기운에 눌려 포기하곤 한다. 실습을 하다가도 그 과정을 못 견디고 그만두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점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일이 간절하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극복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몸집이 작아 안아주기 쉽지만 어르신들은 덩치가 크다는 점이 다를 뿐 본질적인 돌봄의 마음은 비슷하다고 느꼈다. 때로는 대변을 보는 모습을 직접 지켜봐야 하는 순간도 오지만 그조차 익숙해지니 괜찮아졌다. 남들도 다 해내는 일인데 나라고 못할 것이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니 하루하루가 다르게 적응이 되어갔다.

 

 

안정적인 미래와 멈추지 않는 도전


내가 지금 일하는 요양원은 시설이 매우 깨끗하고 체계적이다. 1층에는 사무실이 있고 2층부터 4층까지 어르신들의 증상에 따라 층별로 관리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전 직장이었던 뷔페 식기세척 일과 비교하면 장점이 명확하다. 요양보호사는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지원하는 일자리이기에 안정적이며 기술의 발전이나 인공지능의 등장에도 쉽게 대체되지 않는 인간적인 노동이다. 또한 급여가 고정적으로 지급되고 주말 휴무를 조율하여 개인의 삶을 챙길 수 있다는 점이 큰 위안이 된다.
이전 직장에서는 매니저의 판단력이 부족해 스케줄 관리가 엉망이었고 그 때문에 작년에 꼭 가고 싶었던 곳을 방문하지 못하는 불상사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계획적인 생활이 가능해졌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명확하다. 세상에 쉬운 일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남들이 힘들다고 미리 겁을 주는 말에 휘둘려 시작도 해보기 전에 포기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본인에게 손해로 돌아올 뿐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일은 반드시 존재한다. 나 역시 몸이 부서져라 일했던 식기세척보다는 요양보호사로서의 삶이 현재의 나에게 훨씬 더 긍정적인 가치를 준다고 확신한다.
특히 나이가 들어서도 오래도록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남들이 힘들다고 도전을 멈추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한계를 스스로 정하지 않고 부딪쳐 나갈 때 비로소 새로운 길이 열리는 법이다. 나는 오늘도 내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며 나만의 인생 2막을 성실하게 채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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